Intro.
성장을 결심하게 해 준 #1 문학.
삶의 의미에 대해 알려준 #2 그리스도.
주체적 구원의 길을 알려준 #3 붓다.
세 계단을 올랐지만 아직 부족하다.
이 3단계는 현실과 동떨어져있다.
추상적으로 떠다니는 개념을 넘어 현실의 문제와 직면할 때다.
그렇게 철학의 계단을 오르게 된다.
채사장은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소개하며 철학을 이야기한다.
내가 읽다 포기한 유일한 책이다.
이해의 여부를 떠나서 어떤 책이건 끝까지 읽었었는데, 이 책은 달랐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고, 읽히질 않았다. 그래서 내려놨었다.
채사장도 안 읽히는 게 당연하다고 독려한다.
마음 한편이 놓이는 기분이 들었다.
채사장은 나 같은 독자를 위해 안 읽히는 이유를 설명해준다.
니체의 철학이 가치 있는 이유는 근대와 현대를 구분 짓기 때문이란다.
그러나 나에겐 서양의 근대와 현대의 특징에 대한 지식이 없다.
서양의 철학은 물론 역사에 대해서도 알고 있는 게 거의 없다.
그러니 이해하기 힘들 수밖에.
Background.
채사장은 그래서 니체 이전의 역사의 특징에 대해서 먼저 설명해준다.
서양의 역사는 크게
고대 / 중세 / 근대 / 현대 / 로 나눌 수 있다.
많이 들어본 그리스 로마시대의 고대.
기독교와 로마제국의 중세.
르네상스 이후 과학과 이성의 근대.
이 이성에서 벗어나는 탈근대의 현대.
이렇게 네 단계가 있다.
니체는 근대와 현대의 구분을 지어준 철학자라고 할 수 있다.
이성으로부터의 탈출. 탈근대의 시작이라고 말한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우리는 니체를 배우기 전 플라톤주의에 대한 이해도 필요하다.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는 어디서 한 번쯤 들어본 적은 있다.
그리고 플라톤의 이데아에 대해서도 얼핏 들어본 것 같다.
동굴 속에서 그림자를 통해서 이데아를 바라보는? 그런 것들을 도덕 시간에 배웠던 것 같다.
다시 돌아와 플라톤주의를 생각해보자.
플라톤주의는 세상을 둘로 나눠 형이상학적 세계를 강조하는 철학이다.
휴, 이 말들이 그저 답답할 따름이었다.
역사는 물론 플라톤의 철학까지 알아야 한다니.
내가 니체의 책을 읽지 못하는 건 당연한 거였겠구나 싶었다.
마음을 가라앉히고 정리해보자.
플라톤은 세상을 두 개로 나눴다.
1. 이상적인 이데아.
2. 현상 세계(우리가 사는 세계).
이데아는 본질이고 불변하고 영원하며 모든 것의 원인이 되는 실체다.
반면 우리가 존재하는 현상 세계는 변화하고 유한한 부수적 결과물일 뿐이다.
그저 이데아의 모방이자 그림자일 뿐이다.
자 이제 세상을 둘로 나눠 형이상학적 세계를 강조하는 게 무엇인지 얼핏 알 것 같다.
이상적인 이데아를 설정하고 현실이 아니라 추상적인 이데아의 개념을 강조한다.
이런 플라톤주의는 중세의 기독교 근대의 이성에 모두 들어있다.
현실세계로부터의 구원으로 천국을 말하는 기독교.
이성과 합리성만을 강조해 이성적이지 않은 모든 것들을 배제한 근대 이성중심주의.
이 둘을 니체는 비판한다.
플라톤주의를 비판한다.
이런 이분법적이고 형이상학적인 것을 추종하느라 현실세계를 보지 못함을 비판한다.
하늘의 가치만을 추구하다가 대지를 더럽히고 말았다고 말한다.
그래서 선언한다.
신은 죽었다.
휴, 어려웠다. 그래도 나름 정리가 된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다시 읽어보고 싶은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Contents.
1. 신의 죽음을 선언한다.
앞서 말한 것처럼 플라톤주의를 부정하며 신의 죽음을 선언한다. 신의 죽음과 관련된 내용은 니체의 많은 책에서 자주 등장한단다. 신의 죽음이란 무엇일까? 일반적으로 극단적인 허무주의를 의미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저자는 허무주의보다 근대성의 종말을 의미한다고 말한다. 신은 그리스도교와 이성중심주의를 대표하는 매개체 정도로 이해할 수 있겠다. 즉 니체는 신의 죽음을 통해서 플라톤주의의 종말과 근대의 종말을 표현하고 싶었던 것 같다.
그래서 신이 죽어서 어쨌다는 건데?
->내가 발 딛고 있는 구체적 현실로 돌아와라. 이상적이고 불변하는 본질의 세계 같은 것은 없다. 초월적 세계의 무엇인가를 추구하다가 현실의 건강함을 짓밟지 말고 현실로 돌아오라고 한다. 이를 위해 신의 죽음을 선언한 것이다.
그러니 허무주의보다는 실존주의적 성향을 띄고 있다고 말할 수 있겠다. 허무함에 빠져 허덕이는 것보다 빨리 현실로 돌아오라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2. 초인의 개념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 보면 위버멘쉬 (Übermensch)가 등장한다. 인간을 극복해야 할 대상으로 보고 이를 극복한 사람을 초인이라고 부른다. 슈퍼맨처럼 초월적인 존재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앞서 말했던 신의 죽음을 인정하고 기존의 이성중심주의에서 벗어난 사람을 말한다. 탈 근대성을 이뤄낸 사람들을 초인이라고 말한다고 이해하면 되겠다. 대지에 속해있으며 건강하고 생명력이 넘치는 존재다. 그리고 신이 죽은 세상의 허무를 긍정하는 주체적인 존재다.
그것이 바로 초인이다.
초인이 되기 위한 방법을 니체는 그 유명한 낙타 사자 아이의 비유를 통해 설명하고 있다.
낙타는 인내심의 상징이다. 사회, 종교, 도덕, 관습이 주는 의무에 순종하고 고통을 인내한다. 이는 중세의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기독교에서 제시하는 의무에 순종하고 힘듦을 견뎌낸다. 그리스도교의 도덕관을 반영하는 대상을 낙타로 표현한다.
사자는 "해야 한다"에 대항하여 "나는 원한다"라고 말하는 존재다. 종속적인 노예에서 주체적인 주인으로의 변화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낙타에서 사자로 되는 모습은 중세에서 르네상스를 통해 근대로 넘어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표현하는 것 같다. 근대 이성의 주체성을 상징하는 존재다.
그러나 아직까지 플라톤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니체는 마지막으로 어린아이를 표현한다. 어린아이는 순진무구함이고 망각이다. 새로운 가치를 창조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중세와 근대에서 탈출해 탈근대성을 이뤄내고 현대로 도약할 수 있게 해 준다. 형이상학적 이원론을 극복하는 초인이 바로 이 아이다.
3. 영원회귀
신이 죽은 세계. 천국도 지옥도 없고 세계의 창조 목적이나 방향성이 사라진 이 허무한 세계. 이 세계는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니체는 '영원회귀'라는 하나의 세계관을 제시한다. 목적도 이유도 없이 팽창과 수축을 무한히 반복하는 세계. 시작도 끝도 없이 똑같은 것이 그 상태 그대로 영원히 돌아가는 상태를 의미한다.
이해하기 힘들다. 기존의 세계관들과 같이 비교해보자.
1. 기독교의 세계관은 사후의 천국을 제시한다. 시간은 영원히 지속된다. 탄생, 성장, 노화, 죽음 이후의 사후세계.
2. 베다와 불교는 영원히 반복되는 시간이다. 윤회로 알려져 있는 세계관이다.
3. 근대 이성주의와 과학은 죽음 이후의 단절을 말한다.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세계관이다.
니체는 네 번째 세계관을 설명한다.
4. 태어나 지금까지 살아온 나는 결국 늙어서 죽고 말 것이다. 죽은 이후엔 다시 나로 태어난다. 그리고 지금의 삶을 그대로 반복한다. 이것이 영원회귀다. 어떠한 이유나 목적도 없다. 성장, 휴식, 끝도 없다. 허무주의의 최고 형태다.
니체는 이러한 허무를 인정하고 나의 삶을 끌어안을 수 있는 존재. 그를 초인이라고 표현한다. 이런 것이 인생이라면 그래, 한 번 더!라고 외치면서 허무의 깊은 심연 속으로 뛰어들 수 있는 존재. 상당히 어려운 개념이다.
Summary.
니체는 사람들이 플라톤주의에서 헤어 나오길 바랬다.
현실에 좀 더 집중하고 대지의 충만함을 느끼길 바랬다.
니체의 사상들이 왜 그렇게 큰 영향을 미쳤는지 조금 알 것 같다.
기존 사람들의 뿌리를 흔드는 질문을 던진 것 같다.
이성중심주의에겐 그 이성이 진정으로 중요한 현실을 놓치진 않는지 질문한다.
그리스도교에겐 천국과 이상을 좇다 현실을 놓치진 않는지 물어본다.
그렇게 그 두 세계에서 벗어나 탈근대성을 이뤄내고 현대를 열어젖힌다.
1900년에 딱 죽은 니체는 사망연도도 의미가 깊다.
근대와 현대를 구분 짓는 대명사로 니체가 꼽히는 이유를 알겠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초인의 가치를 느끼고 현실에 적용시켜야 한다고 생각한다.
허무를 인정하고 허무를 끌어안을 수 있는 초인.
생각이 깊어진다.
Review.
이렇게 채사장의 철학 파트와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대략적으로 읽어봤다.
니체가 말하고 싶었던 것이 어떤 것인지 어렴풋이 이해할 수 있어서 행복한 시간이었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읽어야 할 동기가 생겨서 고마운 시간이었다.
더 나아가 허무주의에 빠지지 않고 현실에 눈을 돌리게 해 준 시간이었다.
'순간'을 살게 해 줬다.
하루하루를 감사하고, 빛나는 생명을 온몸으로 만끽하리라.
둥둥 떠다니는 형이상학적인 개념도 좋지만 내가 살고 있는 현실에도 집중하리라.
찰나의 순간이라도 지금 이 순간을 즐길 줄 아는 사람이 되리라.
이런 다짐들을 할 수 있는 행복한 시간이었다.
오늘의 계단은 이렇게 오를 수 있다.
불편하고 힘든 책이었지만 불편함을 마주함으로써 한 단계 성장할 수 있었다.
언젠가 니체의 책을 읽고 리뷰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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