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5월 18일을 맞아 1980년 5월 18일 광주에서 일어난 민주화운동에 관한 글을 써보려 한다. 이런 사안들은 조심스럽다. 한쪽으로 편향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특정 인물을 미워할수도 있다. 그러나 내가 이야기하고싶은것은 우리나라의 민족성과 우리가 지금 누리고 있는 자유를 얻기위한 노력들을 얘기하고 싶다.
5.18의 배경부터 알아보자. 우선 1979년 박정희 대통령이 10.26사태로 인해 죽는다. 그렇게 당시 부통령이었던 최규하가 대통령 권한대행이 된다. 그리고 빠르게 10대 대통령 선거를 통일주체국민회의에서 박정희 대통령과 같은 방식으로 진행한다. 그렇게 최규하가 대통령직에 오르게 되는데, 바로 12.12 사태로 전두환 등 신군부 세력이 등장한다. 그렇게 등장한 신군부 세력에 의해 허울 뿐인 대통령으로 전락하게 된다.
이에 대한 반발은 전국적으로 일어났다. 1961년 5.16 군사정변부터 1979년 약 20년의 시간동안 박정희 대통령의 집권하에 민주주의는 외면당했었다. 그런데 또 신군부가 등장해 군사집권을 하니 반발이 심했으리라. 대학교수들이 나와서 성명발표를 하고 대학생들은 시위에 동참했다. 광주에서도 시위가 있었다.
옛 전남도청 앞에 있는 분수가 중심이 되어 사람들이 모였고, 연설을 하고 노래를 하며 시위를 이어나갔다. 5.17일 전두환의 비상계엄 전국확대 선포가 있기 전까진 평화로운 집회였다. 시민들은 비상계엄 전국확대를 결정하면 다같이 다시 모이자고 약속했고 5.17일 전두환이 비상계엄을 전국적으로 확대했다.
비상계엄을 전국적으로 확대해 정당 및 정치활동 금지·국회 폐쇄·국보위 설치 등의 조치를 내리고, 영장없이 학생·정치인·재야인사 2699명을 구금했다. 비상계엄 전국확대는 신군부가 세력을 확장시키고 계엄군을 적극적으로 투입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한 조치라고 보면 될 것 같다.
당시의 학생들과 시민들은 신군부의 의도를 알고있었다. 그래서 비상계엄 전국확대를 반대하는 시위를 진행했다. 그러나 어쨌든 계엄은 전국적으로 확대되었고, 계엄군들은 각 대학에 배치되어 학생들의 시위를 막았다. 광주 전남대도 예외는 아니었다.
비상계엄이 전국적으로 확대된 다음 날인 5.18일 오전 전남대에서 대학생들의 시위가 진행됐다. 그러나 계엄령으로 인해 전남대에 배치된 계엄군들은 전남대학생들을 구타하며 잔혹하게 진압했다. 이 사건이 5.18민주화운동으로 이어진다.
계엄군과 시민들의 무력다툼이 시작된다. 공수부대로 이루어진 계엄군을 당해낼 순 없었다. 그러나 경찰서나 예비군 탄약고에서 무기를 꺼내와 실제 총격적을 벌이기도 한다. 탱크와 헬기를 동원한 군의 공격을 시민들은 고스란히 받게 된다. 바깥을 향해야할 우리나라의 총알들이 국민을 향하니 얼마나 아이러니 한 일인가. 우리를 지키기 위해 존재하는 군대가 오히려 우리를 죽였다.
그렇게 5월 27일 군이 전남 도청을 비롯한 시내 전역을 진압하기까지 10일동안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죽고 다쳤다. 사망자 166명, 행방불명자 54명, 부상 후유증 사망자 376명, 부상자 3,139명. 상당한 수다.
광주시민들은 어떤 마음으로 총을 든 군인들 앞에서 시위를 벌였을까. 민주주의가 뭐라고 목숨까지 걸고 시위를 했을까. 시민들을 때리고 죽여야하는 당시 군인들은 어떤 마음이었을까. 대체 왜 이런 희생이 있어야하고 대체 왜 죽어야했을까. 지금의 나로썬 이해하기 힘들다. 나에겐 당연한 것들이기 때문이다. 당연히 시민으로써의 권리를 주장할 수 있고, 당연히 대통령을 직접 뽑을 수 있다. 모든 것들이 당연하다. 이들의 희생 덕분이다.
요즘 읽고 있는 최태성의 <역사의 쓸모>라는 책에서 저자는 시대별로 해결해야할 과제가 있다고 말한다. 개항기에는 신분 해방을 목표로 싸웠다. 갑신정변 갑오개혁 동학농민운동 등에서 당시 사람들의 꿈과 희망을 엿볼 수 있다. 일제강점기에는 당연히 독립이다. 국내 뿐만아니라 만주 연해주 하와이 등지에서 다양한 단체에 많은 사람들이 독립을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리고 현대에 들어선 민주화운동이다. 민주주의를 얻어내기 위한 노력들을 4.19혁명부터 5.18민주화운동, 6월 민주항쟁까지 확인할 수 있다.
우리나라는 이렇게 끊임없는 노력으로 좀 더 나은 삶을 위해 거리에 뛰쳐나올 수 있는 민족성을 갖고 있다. '우리'의 의미를 잘 파악하고 있고, 그에 맞게 실천하는 모습도 보여줄 수 있는 저력을 가진 나라다. 우리의 아픈 역사들은 반대로 자랑스러운 선조들의 노력을 확인할 수 있는 역사이기도 하다. 뼈아픈 일제강점기에 멋진 독립투사들이 있었던 것 처럼 우리나라는 이와같은 민족성을 통해서 발전해왔고 앞으로도 발전할것이다.
마지막으로 미얀마 이야기를 하고 싶다. 미얀마에서 쿠데타가 일어났다. 사실 다른 나라고 관심도 없었다. 그런데 문득 영화 <택시운전사>에서 광주사람들이 끝까지 외국기자를 지켜주고 외국방송에 내보내달라고 말하는 모습이 스쳤다. 본인들의 투쟁을 알아줬으면 하는 마음을 놓치고 있진 않았나 돌이켜보게 됐다. 우리가 과거에 그랬듯 지금의 미얀마가 그렇다. 많은 사상자가 나오고 있다. 역사는 과거에 국한되지 않는다. 지금 우리의 삶도 역사가 된다. 역사의식이란 이를 인지하고 행동하는 것이다. 현재 미얀마에서 일어나는 일에 조금만 더 관심을 갖는 시민의 자세를 보여줄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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