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4.19 혁명

송윤선 2021. 4. 19. 22:51

4.19혁명

4월 19일을 맞아 4.19혁명에 대한 글을 포스팅해보려 한다. 한국사능력검정시험을 응시한 이후로 이렇게 특정 날짜가 되면 해당 사건이 떠오르게 됐다. 계속 중얼거리면서 4.19혁명, 5.16 군사정변, 5.18민주화운동 등을 외운 탓 인것 같다. 어쨌든 이승만의 하야를 낳았던, 우리나라에서 민주주의를 위한 최초의 운동인 4.19혁명에 대해 알아보자.

 

1. 2.28 운동

4.19혁명은 의외로 대구에서 시작한다. 지금이야 TK로 대표되는 대구 경북이지만, 당시만 해도 굉장히 진보적이었음을 알 수 있다. 이 사건은 2월 28일 장면 정부의 유세현장에 가지 못한 대구의 고등학교 학생들이 들고 일어난 사건이다. 당시 이기붕과 이승만으로 대표되는 자유당은 장면 등의 민주당의 선거유세장소에 고등학생들이 많이 호응하는 것을 좋게보지 않았다. 그리고 그 때 당시의 선거유세는 보통 일요일에 진행됐었다. 이 고등학생들을 막기 위해서 이승만 측은 고등학교에 압력을 가해 일요일에 학생들이 등교하도록 만들었다. (이러니 당연히 반발이 생길수밖에.. ㅎㅎ)

 

일요일에 등교를 시킨 행위가 장면 정부를 견제하기 위한 정치적 목적임을 깨닫고, 분노한 학생들이 들고일어난 운동이다. 본인들의 학업을 정치를 위한 수단으로 사용하지 마라는 의미로 들고 일어났다. "학원을 정치화하지 마라!" "학원의 자유를 달라!" 등의 구호를 외치며 운동에 참여했다. 

 

출처 doopedia, 네이버 지도

 

이 운동을 기념하기 위해 현재 대구 시내에 2.28공원이 있다. 동성로에 놀러가면서 국채보상운동공원 옆에 위치한 2.28공원을 몇 번 방문했었지만 이런 사연이 있는줄은 몰랐다.

 

2. 3.15 부정선거 및 3.15 마산의거

 2.28 학생운동 이후 3월 15일 이제 선거가 시작됐다. 그런데 이승만 대통령은 이기붕 부통령의 낙선을 막기 위해서 갖가지 부정선거를 시행한다. 투표권을 갖고 있는 사람들을 매수해 투표를 하지 않게 하고 그들의 표를 자신들을 찍은 표로 만들어 넣었다. 또, 3명에서 5명 짝지어 다같이 투표하게 만들고, 누구를 찍는지 확인하고 제출하게 했다. 심지어 어떤 투표소에서는 투표권자의 총 수보다 투표된 표의 수가 더 많은 경우도 발생했다. 

 

 마산에서 이런 부정선거에 불만을 품은 사람들이 시위를 하게 된다. 사건의 발단은 마산시의 민주당 간부들이 투표소 안으로 들어가 40%사전투표와 3인조 공개투표를 비롯한 자유당의 부정선거 현장을 확인한 것이다. 이들은 바로 선거 포기를 선언하고 시위를 준비한다. 이렇게 마산에서 시위가 시작된다.

 

이 시위를 진압하기 위해서 경찰은 총격을 가했고, 이 총격에 7명이 사망하고 870명이 다쳤다. 그리고 4.19 혁명의 방아쇠라고 할 수 있는 김주열 학생의 시신이 마산 앞바다에 떠오르게된다. 울분을 토해야한다. 분노해야한다. 17살의 어린 나이에 시위에 참여했다가 최루탄을 눈에 맞고, 머리 뒤까지 튀어나오는 부상을 입는다. 게다가 이 학생은 밧줄로 돌에 묶여 바다에 던져진다. 은폐하기 위해서다. 국민을 대표하려는 자들의 만행이 공화정치를 주장하고 대통령이라고 스스로 칭하는 자들의 행동이 지금으로썬 이해할 수 없는 비도덕적이고 비민주적인 행위임은 정치적 소견이 어떻든 간에 자명한 사실이다.

 

심지어 이 시신이 떠오른 날은 4월 11일로, 사망 이후 27일정도 지난 후다. 그동안의 부모님의 마음고생과 주변사람들의 슬픔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 분명하다. 생사를 알지도 못하는 아들을 기다리는 어머님의 마음은 가히 상상할 수 조차 없다.

3. 4.19혁명

 마산 앞바다에서 김주열 학생의 시신이 떠오르고 이에 분노한 시민들이 대대적으로 들고일어난다. 4월 18일 고려대학교 학생들이 먼저 시위를 일으켰다. 3천명정도 규모의 고려대학교 학생들은 국회의사당으로 걸어가면서 시위를 진행했는데, 50~60명의 괴한들이 나타나 무차별 구타를 했다. 이를 4.18고대생 피습사건이라고 부른다. 이 사건이 계기가 되어 다음날인 4월 19일에 학생들이 일제히 궐기하게 된다. 

 

 

 이 시위는 점점 커져 대학교수들의 시국선언과 시위 참여를 이끌어냈고, 결국 이승만의 하야로 끝나게 된다. 이 과정에서 수많은 희생자들이 발생했다. 경찰의 무차별 폭행, 정부가 고용한 깡패집단의 무차별 폭행 심지어는 총격까지. 자유를 향해, 민주주의를 향해 우리나라 국민들이 투쟁했다. 

 

4. 의의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민주이념을 계승하고 ... <생략>
-출처 : 대한민국 헌법 전문

 우리나라 최초의 민주화 운동이다. 자유, 민주주의를 추구하는 국민들의 마음을 확인할 수 있는 사건이었다. 이러한 정신은 위에 인용한 우리나라 헌법의 전문에서 확인할 수 있듯,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한국사를 공부하면 가슴이 뜨거워지는 순간이 있다. 영웅의 등장도 물론 가슴뛰고 신나는 이야기지만, 과거 의병활동, 백성들의 투쟁, 이번의 민주화운동처럼 국민 모두가 한마음 한뜻이 되어 움직인 것이 나를 전율케한다. 2016년, 2017년 박근혜 대통령 퇴진 시위에 직접 참여했던 경험이 있다. 또, 2019년 검찰개혁을 요구하는 촛불집회에도 참여해본 경험이 있다. 모두 짜릿한 경험이었다.

 

 나의 정치적 의사를 표명하고자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다. 한명의 국민으로써, 본인이 생각하기에 옳은 일을 위해서 개인의 시간을 할애해 뛰쳐나갈 수 있어야한다고 이야기하고 싶었다.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적극적으로 바라보는 것의 중요성을 이야기하고 싶었다.

 

 한사람의 국민으로써 우리는 이만큼의 힘을 가지고 있다. 그러기에 더욱 제대로 판단할 수 있는 눈을 키워야한다. 정치적 소견, 역사적 판단을 현명하게 하는 국민이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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