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리뷰

[책 리뷰] 채사장 - 열한계단 #1 문학 (feat. 죄와벌)

송윤선 2021. 5. 15. 22:26

[책 리뷰] 채사장 - 열한계단 #1 문학

 이렇게 챕터를 나눠서 따로 리뷰를 하는 이유는 각 챕터별로 채사장이 말하는 책도 같이 리뷰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채사장의 열한계단 첫 번째 챕터는 문학이다.

 

 고등학교 3학년때까지만해도 채사장은 박학다식하지 않았단다. 그저 학교생활에 지친 한국의 고등학생이었다. 열심히 공부하지도, 뜨겁게 반항하지도 않는 그냥 그저 그런 반응 없는 학생이라고 스스로 말한다. 그런 그에게 문득 한 생각이 스친다.

 

"지금까지 나는 소설책은 고사하고 그 어떤 책도 끝까지 읽어본 적이 없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귀엽게도 완독하는 첫 책을 신중하게 고른다. 인생 첫 책이니 의미 있는 책이어야 한다며 멋진 책을 고르려 한다. 그렇게 선정된 책이 바로 표도르 미하일로비치 도스토옙스키의 죄와벌이다. 두께면 두께, 작가의 이름, 제목 등 다 멋있었단다. 그렇게 19살의 학생은 인생 처음으로 두꺼운 책을 읽기 시작한다.

 

 내 이야기도 중간중간 섞어보고 싶다. 나도 죄와벌을 읽었다. 압도될 만큼 두꺼운 책이다. 500쪽짜리 책이 두권이나 있었으니 너무 부담스러웠다. 그래도 넘치는 게 시간이란 생각에 군대에서 읽게 됐다. 민음사의 세계문학전집에 빠져있던 차에 두꺼운 책을 도전한 첫 책이었다. 걱정과 달리 너무 잘 읽혔다. 화장실이나 불침번 때도 계속 들고 다녔다. 몰입도 있는 설명과 박진감 넘치는 전개, 사색하기에 딱 좋은 주제, 결정적으로 재밌었다.

 

 


<죄와벌> 줄거리

 죄와벌의 대략적인 줄거리는 이렇다. 라스꼴리니코프라는 23세의 대학생이 주인공이다. 러시아의 상트페테르부르크가 배경이며, 시대는 19세기 러시아 혁명이 일어나기 이전이다. 휴학 중인 라스꼴리니코프는 가난했다. 행색도 볼품없었고, 제대로 먹지 못해 몸도 마음도 건강하지 못한 상태였다. 그러던 중 로쟈(라스꼴리니코프의 애칭)가 술을 마시다 옆 테이블의 이야기를 듣는다.

 

 고리대금업을 통해 부를 쌓은 전형적인 악인인 노파가 있다. 이 노파는 죽을 때가 가까워오자 자신의 사후 명복을 위해 모든 재산을 수도원에 기부하기로 결정한다. 옆테이블에서는 이 노파를 살해해 돈을 빼앗아 무수히 많은 가난한 사람을 도울 수 있다면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이 대화는 로쟈에게 막대한 영향을 미친다.

 

 범인과 비범인을 나누고 비범인은 궁극적인 선을 위해 소수를 희생시킬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로쟈는 스스로를 비범인이라고 판단했다. 그렇게 노파를 살해한다. 

 

 첫 번째 사색 포인트다. 범인과 비범인의 구분. 얼토당토 않은 이야기처럼 들릴 수도 있지만, 실제 그런 영향력을 행사하는 사람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나도 비범인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어떤 집단에 속해있지만 그 집단의 규칙밖에 나와있는 사람. 나의 행동에는 제약이 크지 않은 사람. 그럼에도 범죄를 일삼는 사람이 아니라 모두가 믿기에 제약을 굳이 두지 않는 사람이 되고 싶어 졌다.

 

 노파를 살해한 이후의 로쟈의 감정상태도 아주 묘사를 잘했다. 살인자의 내면을 어떻게 이리도 잘 표현했는지 신기할 따름이었다. 노파를 죽이겠다고 마음먹은 순간부터 스스로를 혐오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정신착란 증상을 보이는 등 죄책감에 시달리는 모습을 보인다. 이 대목에선 진정한 자유의 의미를 생각해보는 좋은 포인트다. 

 

 그러다 소냐라는 여자를 만난다. 소냐는 매춘부다. 그럼에도 본인을 희생해 가족들을 부양하려는 삶을 살아간다. 로쟈가 다수의 선을 위해서 소수의 희생도 감수한다고 생각했던 반면, 소냐는 자신을 희생함으로써 다수의 선을 실현하는 사람이었다. 이런 소냐에게 본인의 죄를 자백한다. 그리고 소냐의 구원으로 경찰서에 자수를 하게 된다. 그렇게 로쟈는 8년간의 시베리아 유형 길에 오르고, 소냐도 같이 따라간다. 소냐는 로쟈를 돌보고 로쟈는 성경을 읽는다. 


 이 책을 덮고 소년이었던 채사장의 인생은 완전히 바뀐다. 열한계단 중 첫 번째 계단인 문학의 계단을 오르게 된다. 노파를 살해하는 행위를 통해서 정의에 대해 생각하고, 영웅에 대해서 생각한다. 진정한 정의가 무엇인가. 공리주의를 위해서 소수의 희생을 감수해도 되는 것인가. 진정 비범인이란 존재가 따로 존재할까. 등등의 생각은 작가를 열광케 했다. 

 

 법, 도덕, 관습, 종교를 넘어설 수 있는 사람이 있으며, 그가 바로 영웅이라는 로쟈의 생각은 그때 당시의 작가에게 충격으로 다가왔단다. 이 생각은 지금은 급진적이고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여겨지지만, 한 권의 책을 처음으로 다 읽어본 고등학교 3학년 학생에겐 신선한 충격이었으리라.

 

"이해할 수 없는 세상의 부당함과 불공평함은 어쩔 수 없는 것이 아니라 충분히 치유할 수 있는 것이었다. 사회의 부조리가 선구적인 영웅에 의해 해결될 수도 있다는 깨달음에 나는 열병을 앓았다."

 

 책을 다 읽었을 당시의 생생한 사고가 그대로 전달되는 대목이 너무 마음에 든다. 무기력하게 학교를 다니던, 어차피 세상은 불공평하다고 생각하던 학생에게 로쟈의 생각이 얼마나 충격이고 신선 했을지를 그대로 전달하고 있다. 

 

 

 또, 어른의 작가가 죄와벌을 바라보는 시각도 덧붙여줘서 너무 좋았다. 지금의 작가는 로쟈의 삶보다 소냐의 삶을 더 지향한다고 한다.

"주어진 삶과 고통을 묵묵히 감내하고 그 안에서 스스로의 구원을 찾는 모습이 더욱 도달하기 어려운 이상향처럼 느껴진다"

 

 어쨌든 이렇게 작가의 소년 시절은 막을 내렸다. 소년의 세계에 균열이 가고 삶의 방향이 크게 바뀐다. 학업에 더욱 전념해 국문학과에 진학하려 노력하고, 많은 소설책들을 읽어나간다. 이렇게 소년은 열한계단 중 한 계단을 오른다.